한식, 추석, 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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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추석, 벌초
옛날 조상님들은 농경사회에서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풍년을 기원하면서 농사를 마무리하고 조상에게 풍년을 감사하면서 제를 올리기 전 농사짓느라 혹한에 혹은 장마, 폭우 때 잘 돌보지 못한 조상님들의 묘를 둘러보며 확인하고 잡초와 잡목을 제거하고 깨끗이 하는 행위를 벌초라 합니다. 금초라 부르기도 합니다.
벌초의 기원
벌초의 기원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시제와 묘제를 언급하고 있고,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부분 등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대한민국 사회에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하는 관습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실제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시대에는 조상들의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도 불효로 인식했습니다.
벌초 시기
벌초를 하는 시기는 봄, 가을 2번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봄에는 한식, 가을에는 추석 때 벌초를 합니다. 가을의 경우 딱히 추석 당일이 아니더라도 추석 몇 주전에 미리 벌초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벌초의 대상이 되는 묘는 가깝게는 부모와 조부모, 더 올라가면 선산에 모셔진 모든 조상들의 묘를 포함하게 됩니다. 오래전부터 특정 성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가문의 선산이 오래된 경우에는 많은 수의 묘를 벌초해야 됩니다. 그로 인해 보통 여러 가족들이 모여 직계조상의 묘만 분담하는 형태가 일반적입니다.
벌초 변화
과거에는 특정 성씨 집단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고, 보통 3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벌초를 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가까운 친척이라 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핵가족화가 진행된 상태라 벌초 자체를 안 할 수는 없는데 또 그렇다고 적은 머릿수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도시로 떠나지 않고 여전히 해당 지역에 남아있던 문중의 사람들이 벌초를 책임지고, 일가친척들은 이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의미에서 벌초비를 주는 형태가 많았습니다. 1980년대 ~ 90년대 중반까지 이야기이고, 이후로는 시골에 있던 분들도 대부분 늙으신 까닭에 직접 벌초를 못 하게 되자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벌초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창기에는 그냥 마을에서 그나마 좀 젊은 사람들한테 술값이나 밥값 좀 쥐어 주고 맡기는 형태가 많았으나 전문적으로 하는 벌초를 대행해 주는 전문업체도 생겨났고,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현재는 대부분 벌초대행업체에 맡기는 쪽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벌초 도구
과거에는 낫이나 원예용 가위 같은 걸 써서 벌초를 했지만 요즘에는 예초기란 아주 좋은 도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초기로 인한 사고가 많이 나는 편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추석을 앞둔 벌초 때 예초기 돌리다가 땅벌집 건드리는 바람에 땅벌들에게 공격을 받고 응급실 신세를 지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벌초를 간다면 벌레를 쫓는 스프레이는 필수가 되었습니다. 매년 벌초 때 독충들을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대비가 어려운 사고 유형입니다. 예초기와 관련된 사고도 많은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잡아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바닥의 돌 같은 게 튀어서 맞아 다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벌초할 때는 선캡이나 헬멧 같은 걸로 얼굴을 보호하는 게 좋고, 일자형 날보다는 힘은 떨어지지만 안전한 원형 톱날이나 나일론 커터 또는 예초기 롤러를 쓰는 게 좋습니다. 간혹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회포 푸신다고 막걸리와 같은 약주 거하게 드시고 예초기 돌리다가 사고 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또한 야생의 들판은 유행성 출혈열이나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SFTS)을 유발하는 쥐와 작은 진드기 등 온갖 종류의 치명적인 병원균, 바이러스를 보유한 전염병 매개체들이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벌초를 하다 절대로 맨 땅이나 풀밭에 그냥 드러누워서는 안 됩니다.